장마 그리고 별

여름철은 은하수의 계절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름은 별을 보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다. 낮이 길고 밤이 짧은 여름은 우선적으로 별을 볼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오후 7시가 넘어 8시가 다 되어가도 하늘엔 아직 빛이 어스름하게 남아있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여름철 습한 기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대표적으로 오호츠크 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이 세력싸움을 하며 생기는 장마전선이 있다. 두 기단 다 습한데다 온도차이가 있어 (오호츠크 해 기단은 저온, 북태평양 기단은 고온) 공기중의 수증기를 많이 포함하게 된다.

밤하늘은 화려하나 밤시간이 짧은건 둘째치고 하늘이 좋은때가 손에 꼽힌다. 이런 조건에다 월령까지 맞춰야 하니 이쯤되면 별보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인 수준..

집에서 바라본 궁수자리와 전갈자리
집에서 바라본 궁수자리와 전갈자리

간혹 ‘오 날씨가 좋네’ 이러고 사진을 찍어보면 이렇게 옅은 구름이 껴있는 경우도 많다. 옅은 구름이 필터 역할을 해줘서 나름 운치있지만.. 장비 바리바리 챙겨들고 나가서 촬영 혹은 관측하려는데 하늘이 이래버리면 허탈해지기 마련이다. 이럴꺼면 대충 챙겨나가지..

요즘이 딱 그 시기이다. 장마전선은 우리나라에서 얼쩡대고있지.. 태풍은 간만 보고있지.. 차라리 태풍이라도 하나 슥 지나가주면 장마전선을 북쪽으로 밀어가면서 날씨라도 개게 된다. 습하긴 하지만 하늘이 화창하면 습기야 대처를 하면 되니 그정도는 뭐..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안그래도 1호 태풍이 북상하면서 북태평양 고기압도 세력을 확장했는지 요사이 그래도 나름 괜찮은 하늘을 보여줬다. 그 태풍은 대만을 지나 살아남지 못해서 다시 북태평양 고기압은 세력이 축소되고 장마는 남하했지만…

지는 봄철 별자리들
지는 봄철 별자리들

그때 보여줬던 날이 대략 이 정도 였다. 남쪽 서귀포는 다습한 공기때문인지 안개와 구름이 가득했고 북쪽 제주시는 이 공기가 산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며 생기는 푄현상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아쉬운건 남쪽 하늘인데.. 아무래도 여름철 제일 화려한 부분이 남쪽 궁수자리와 전갈자리 근처이다보니 이쪽을 보지 못한다는게 아쉽긴 했다.

그러다 며칠 뒤 반가운 하늘이 찾아왔다. 습도가 좀 있긴 하지만 집에서 맨눈으로도 은하수를 분간 할 수 있을 정도의 하늘이 되었고 짝궁의 허락을 받아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고 나갔다. 늦은밤에 나간터라 멀리 나가지는 못하고 돌문화공원 주차장을 찾았다가 장비 펼치고 세팅 하는데 시간걸리는게 부담되어 망원경은 펼치지 않기로 하고 별자리 촬영 할만한 장소로 다시 옮겼다.

푸른하늘 은하수
제주 마 방목지 은하수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중산간 도로 중 5.16 도로변에 보면 말을 방목하는 곳이 있다. 그곳엔 말 구경을 하라고 테크로 깔아놓은 전망대가 있는데 지나다니는 차가 좀 있긴 하지만 그곳에서 촬영을 해보기로 했다.

산간이라 꽤나 습하긴 했지만 하늘은 좋았다. 욕심같아선 차에서 망원경도 꺼내고 세팅해서 찍고 싶었지만 습한 이슬들이 내리는데다 펴고 세팅 하는데만 30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포기했다.

궁수자리와 전갈자리 부근

여름철은 이런 맛에 나가는듯 싶다. 적도의에 망원경을 얹고 성운등을 촬영하는 맛도 좋지만 이렇게 카메라와 렌즈 그리고 간이 적도의 만으로도 은하수의 밝은 부분을 촬영 하고 여기서 각각의 대상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말들과 함께 밤하늘을 보고있으니 간만에 별을 보며 힐링하는 느낌이 난다. 짝궁이 입덧만 하지 않았어도 함께 나와 보는건데 아쉽다. 이번 페르세우스 유성우 시즌은 월령이 좋지 않던데..

IMGP7560
떠오르는 가을철 대상

가이드 촬영을 조금 하고 장비를 접고 나오는데 가을철 대상들이 동쪽으로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다. 다시 장비를 세팅하긴 귀찮고 해서 세워서 그냥 짧게 촬영만 해봤다. 배경과 어우러지는 맛이 있는 촬영이다.

방송 중계탑 위쪽으로 플레이아데스 성단(M45) 그 위쪽으로는 희미하지만 안드로메다 은하(M31)도 찍혔다. 클릭해서 큰 이미지로 보면 구별이 가능 할 듯..

올 여름은 장마도 오래 가고 하늘이 화창한 날이 손으로 꼽을정도로 참 적은듯 하다. 남은 날이라도 좀 좋았으면 좋겠다.

글쓴이: fomalhaut

제주를 좋아하고 별을 사랑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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